연구 소개
“Living Together” (함께 살기): 한살림연구 프로젝트
Jonathan Dolley 조나단 돌리 (영국 서섹스대학 연구원/ 모심과살림연구소 교환연구원)번역: 최민영(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모심과살림연구소와 서섹스대학이 협력하여, 한국 협동조합 먹거리 운동에서 한살림의 역할과 한살림 자체에 대해 연구하는 3년간의 프로젝트를 맡았다.1 환경사회과학전공이며 먹거리체계의 도시화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연구했다. 중국 우한의 도시근교 먹거리체계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연구했고, 인도 델리의 동료들과 협력하여 도시 개발이 농업 생계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했다.2 최근에는 먹거리 및 농업분야의 협동조합들의 역할과 환경적으로 유해한 산업적 농업체계를 대체할 지속가능하고 재생가능한 농업기술의 잠재력에 관심이있다. J.Dolley@sussex.ac.uk
한살림 연구 프로젝트 배경
영국인인 나는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면서 일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몇 년 전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하면서 한국 먹거리 협동조합 사례를 찾았고 한살림을 알게 되었다.
한살림에 대해 가장 먼저 놀랐던 것은 협동조합의 크기였다. 나는 몇 백 명을넘어서는 회원 규모를 가진 소비자와 농민들의 협동조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살림이 30년 만에 75만 명 이상의 조합원이 가입한 조직으로 성장했다는사실에 놀랐고, 그러한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다른 곳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두 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한살림 협동조합은 한국 종교인 동학의 영성을 바탕으로 한 생태철학을 가진 사회운동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협동조합에서 협동의 핵심동기는 다소 경제적이고 주로 삶의 물질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지, 인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하는 특정한 철학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적 세계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협동의 동기가 부여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직관적으로 물질적 정당성을 넘어서는 더 깊은 협동의 동기를 이끌어내는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3년 동안 한살림에 관해 연구하고 책을 쓰기 위해 프로젝트에 지원했고, 모심과살림연구소와 협력하여 한살림의 경험이 미래 먹거리체계를 변화시키려는 다른 협동조합운동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프로젝트의 제목은 ‘함께 살기: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향한 연대의 길로서 한살림’이라고 지었다.3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가 사람들 서로 간에,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상호 유익한 공동체로 함께 살고 함께 번영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목표는 산업적 모델로부터 벗어나 더 지속가능하고 더 공정한 미래를 향해 우리 먹거리체계를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환으로써 한살림의 경험을 연구하고 영국과 유럽연합의 다른 협동조합 조직 및 운동에 그 시사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동학, 한살림, 한살림선언에 대한 첫 인상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천도교경전을 읽고 한살림선언 번역 감수를 도우며 한살림 운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4 이는 한살림의 형성을 뒷받침한 큰 사상들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천도교경전과 한살림선언을 읽으며 나에게 친숙한 여러 다른 종교와 철학적사상들이 떠올랐다. 모든 것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 일상 생활에서 거룩한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묵상과 내면의 고요함을 추구한다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유사점들은 수운 최제우가 가르친 시천(侍天)이 모든 인류의 보편적 진리라는 주장과도 일치한다. 수운은 이와 같은 진리가 세계의 주요 종교의 중심에 놓여 있지만, 그 종교들의 주류 표현에서는 이 진리가 모두 잊힌 것으로 본 것 같다. 사실, 나는 파괴적이고 억압적인 경향을 가진 주류 정치, 경제, 종교적 권력 구조에 대항하는 전 세계의 문화와 종교 안의 억눌린 목소리들 사이에 수운의 사상이 공명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천도교경전에 의하면, 동학의 핵심 가르침을 아우르는 수운의 말은 거룩한 정신(한울님)이 모든 것에 내재하며 따라서 사람들 또한 자신 안에 한울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기심과 부정적인 외부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한울님과 하나라는 진리를 잊고 습관적으로 시천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고통과 악의 원인이다. 한울님과 하나됨을 회복하려면 자신 안에서 한울님의 정신을 키우고 다른 사람을 향해 정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 시천의 길을 키울 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고, 궁극적으로는 폭력적인 혁명이 아니라 ‘자연적 생성’으로 전체 우주를 포괄하게 될 ‘지상의 천국’이 시작된다.
이 세계관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나의 인생 여정에도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천도교경전과 글에 담긴 심오한 사상에 매혹되었고, 연구를 진행하면서더 깊이 탐색하는 것이 기대된다. 나는 특히 일상 생활, 먹거리, 농사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상들이 주는 실질적 시사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천도교경전을 읽으면서 한살림선언 영문번역 감수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수운과 초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사상이 세상의 변혁을 위한 실질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한살림선언이 기계주의 세계관을 현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파괴적 특징의 공통된 근원으로 강조한 것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영국의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글에도 비슷한 사상이 있다.5 그러나 한살림선언은 기계주의 세계관과 대안적인 영적 세계관을 다른 철학적, 문화적 사상의 언급과 함께 설명하여 미즐리의 논점을 보완하면서,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 상호간에,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한 구체적 윤리를 제시한다.
지난 몇 달 동안 한살림선언을 읽고 한살림과 모심과살림 팀을 알게 된 후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태도다. 둘째는 비인간 세계에 대한 공경의 태도인데, 이는 자연과 한울님이 협동하는 활동인 농업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통합하는 먹거리를 먹고 제공하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경
한살림선언은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한울님으로 공경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키워야 할 씨앗으로서 자신 안에 깃든 한울님의 정신을 기를 것을 촉구한다. 한살림선언은 자신과 타인 각자에 대한 깊은 존중의 태도를 보여주며, 또한 똑같이 거룩한 생명을 모시는 자로서 모두가 근본적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부분으로서의 개인과 전체로서의 사회가 전일적으로 통합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인간은 공동체에서 이웃과 협동하며 공생하지만 결코 그 자율성을 상실하지 않고 오히려 참다운 자기실현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6
한살림선언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세상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매우 매력적이고 영감을 주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감동받은 한살림선언의 문장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해월의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한울로서 대접하면, 사람들은 세상을 숭고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7
나는 이 문장이 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핵심적인 진리를 가리키며, 그 방법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함께 일하고 우리 스스로와 서로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워 다른 사람들을 한울님으로 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배우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비인간 세계와의 협동
한살림선언은 밥을 한울님으로서 자기 스스로에게 공양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밥은 자연에 대한 감사와 이를 수확하기 위해 자연과 협력한 농민들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대접받아야 한다. 따라서, 먹는 것은 전 생명과 통합되는 행위, 인간 사회 전체의 협동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밥은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먹는 사람이 받는 공헌물이기 때문이다. 식고(食告)는 한울님, 땅, 이웃에게서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감사의 서약으로 먹는 행위다.
나는 이 원칙이 한살림의 농업에 대한 접근법을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한살림은 재생농업을 촉진함으로써 사람과 땅 사이의 선순환을 만들고, 이로 인해 토양의 건강과 지역의 생물다양성이 재건되어 결국 땅은 더 비옥해지고 회복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관행과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농업이다. 관행 농업은 토지를 자원으로 취급하고 기계와 화학 물질로 자연적인 과정을 통제하고 조작하며 땅에서 가치있는 모든 것을 착취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약과 항생제와 같은 인공적 투입물과 통제방식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고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탄소와 메탄을 방출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한살림이 재생농업의 선구자라는 것이다.8 최근몇 년 동안 재생농업 개념은 유럽과 북미에서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고 있다.9 재생농업은 자연과 협동하는 농법을 포함하는 광의의 용어로 단순화된 농생태계로부터 벗어나 생물다양성이 더 풍부한 농사 체계를 지향하며, 나무, 식량 작물, 피복 작물, 동물 및 무경운 재배와 같은 여러 요소를 통합해서 각 요소들이 전체와 공생하며 어떤 것도 낭비되지 않는 생산적인 먹거리 지형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재생농업 방법은 산업화된 먹거리체계에 대해 갈수록 잠재적으로 실천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재생농업은 특히 협동적 영농에 적합한 중소 규모에서 구현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탄소를 배출하는 대신 탄소를 토양으로 되돌릴 수 있으며, 잠재적으로 농업을 순 CO2 배출에서 CO2 격리(흡수) 기술로 전환할 수 있다.
한살림 경험의 가치
한살림이 재생농업 원칙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을 구축한 경험은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사이의 마음과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협동적 운동의 기회와 어려움에 대한 풍부한 집단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경험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질 좋은 먹거리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재생농업 체계를 개발하고 관리한 한살림의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성찰함으로써 한살림은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적 먹거리체계 접근과 재생농업 원칙 간의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한살림은 연대기반 재생농업 먹거리체계의 혁신가로서 규모에 맞는 경험과 전문성을 구축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한살림 경험을 활용하는 노력에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 설렌다.
결론
오늘날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 위기처럼 보이는 것에 직면해 있다. 일견 보기에도 종말적인 조합들, 재앙적 기후변화, 생태적 멸종, 공기와 물의 광범위한 오염, 지구상 거의 모든 서식지의 미세플라스틱 오염, 분노와 증오에 의해 분리되어 심화되는 사회의 분열, 그리고 산업화된 농업과 우리 자신에 의한 자연 서식지 파괴에 따른 새로운 전염병의 시대는 모든 것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살림선언에서 포착한 한 가지 주요 통찰은 이러한 여러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술적 처방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더 근본적인 전환과 우리가 함께 사는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 오늘날 낭비보다는 검약, 경쟁보다는 협력, 물질적 성장보다는 정신적 성숙, 이기(利己)보다는 공생, 자기주장보다는 사회정의, 분열보다는 통일을 지향하는 참다운 공동체적 각성이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다.”10
나는 전세계에 한살림과 같이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공동체적 각성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조직의 운동이 점점 성장하는 데서 희망을 발견한다.
유럽연합 마리 퀴리 연구지원 프로그램(Marie Skłodowska-Curie Actions): https://ec.europa.eu/research/mariecurieactions/ ↩︎
Dolley, Jonathan (2017) Sustainability, resilience and governance of an urban food system: a case study of peri-urban Wuhan. Doctoral thesis (PhD), University of Sussex. http://sro.sussex.ac.uk/id/eprint/66462/ ↩︎
프로젝트 웹 사이트: https://www.livingtogether.xyz/ 서섹스 대학 웹 사이트의 정보 페이지: https://www.sussex.ac.uk/business-school/research/centresprojects/living-together ↩︎
Kim, Yong Choon, Suk San Yoon, and Central Headquarters of Chondogyo. 2007. Chondogyo Scripture: Donggyeong Daejeon (Great Scripture of Eastern Learning). Translated by Yong Choon Kim, Suk San Yoon, and Central Headquarters of Chondogyo. Lanham, M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동경대전 영문판) ↩︎
Midgley, Mary. 2006. Science and Poetry. London; New York: Routledge. ↩︎
한살림모임. 1989. 『한살림선언』. 한살림. p.96. ↩︎
한살림모임. 1989. 『한살림선언』. 한살림. p.96. ↩︎
여기서 필자는 토양생태계를 죽이고 생물다양성을 줄이는 자연 착취적인 산업적 농업방식을 거부하고 자연과 함께 토양의 건강과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을 추구하는 모든 농업 형태들, 예를 들어 유기농, 자연농, 퍼머컬쳐 등을 포괄하는 좀 더 넓은 범주로서 재생농업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유기농운동과 한살림 지향에서는 유기농이 바로 이와 같은 더 큰 범주로써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필자가 영미권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이미 주류화 및 관행화되어 제한적인 의미를 담게 된 유기농 인증 개념으로 ‘유기농’이 사용되는 것을 보았고, ‘유기농’에 더 이상 토양 및 환경을 살리는 부분이 담기지 않고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용어가 더 상위 포괄적 개념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유기농이든 재생농업이든 주류화, 관행화, 상품화의 대상이 되고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것과, 그 의미를 온전히 지켜가기 위해서는 운동적 차원에서 사람, 자연생태 모든 것의 지속가능성을 통합적으로 고민하는 농업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역자 주) ↩︎
Uldrich, Jack. 2021. “Regenerative Agriculture: The Next Trend In Food Retailing.” Forbes Magazine, August. https://www.forbes.com/sites/forbesbusinesscouncil/2021/08/19/regenerative-agriculturethe-next-trend-in-food-retailing/?sh=5283b98c2153 Lewis, Tim. 2021. “‘Sustainable Isn’t a Thing’: Why Regenerative Agriculture Is Food’s Latest Buzzword.” The Guardian, July 18, 2021. http://www.theguardian.com/food/2021/jul/18/sustainableisnt-a-thing-why-regenerative-agriculture-is-foods-latest-buzzword ↩︎
한살림모임. 1989. 『한살림선언』. 한살림. p.97. ↩︎